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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

안부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ㅡ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中 더보기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 나태주 - 시 더보기
배롱나무 배롱나무 길을 가다 시선이 멎네 길 모퉁이 목백일홍 품위도 품위지만 흔치 않은 미인이다 조금은 엉큼하게 밑동 살살 긁어주면 까르륵 까르륵 까무라칠 듯 몸을 떤다 필시 바람 때문은 아닐 거다 뽀얀 피부며 간드러진 저 웃음 적어도 몇 번은 간지럼타다 숨이 멎은 듯 그 절정 어쩌지 못해 한 백여 일 홍조를 띈다. 시 - 홍성운 더보기
늙은 애인 늙은 애인 81세 된 할머니가 호계장 칼국수 집 아주머니에게 조심조심 낮은 목소리로 넥타이 가게를 묻는다. "할매, 영감님 안계시잖소 넥타이 가게는 신천에 가믄 있는데요 할매는 힘들어 못가요 다음 장에 사소." "근데 누 줄라꼬예?" "말하지 마라" "애인 줄끼요?" "어허, 말하지 말라카이."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할머니가 눈을 흘기며 문을 나선다 가을 하늘이 파랗다. 시 - 문모근 더보기
한 평생 한 평생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래도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 평생이다. 시 - 반칠환 더보기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 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더보기
치자꽃 치자꽃 - 이해인 눈에 익은 어머니의 옥양목 겹저고리 젊어서 혼자된 어머니의 멍울진 한을 하얗게 풀어서 향기로 날리는가 "얘야, 너의 삶도 이처럼 향기로우렴 어느 날 어머니가 편지 속에 넣어 보낸 젖빛 꽃잎 위에 추억의 유년이 흰 나비로 접히네 ※ 아파트 뒤 화단에 가득 심은 치자가 꽃이 피면 그 향기가 바람 부는 날엔 우리 집 뒷베란다까지 날아온다. 6월이 되면서 바람에 실려오는 치자꽃 향기에 아, 치자 꽃이 피었구나.... 하고, 창으로 내려다보니 하얗게 피었다. 사진에 담아 블로그 친구님들 보여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바쁘게 며칠을 보내고...... 오늘 담으려 가니 벌써 지고 있다. 2020년 6월 17일 더보기
동치미 사진 - 인터넷에서 동치미 감곡에 사는 여자들이 꽃 피는 원서헌에 놀러왔다 국수 말아 점심 먹고 술기운이 노을빛으로 물들 때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내 옆에 선 여자가 살갑게 말했다 - 이래도 되죠? 내 팔짱을 꼭 꼈다 - 더 꼭! 사진 찍는 여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럴 때면 나는 마냥 달콤한 생각에 폭 빠진다 - 나랑 사랑이 하고 싶은 걸까 헤어질 때 또 팔짱을 꼭 꼈다 나는 살짝 속삭였다 - 나랑 同寢(동침)이 하고 싶지? 속삭이는 내 말을 듣고 그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동치미 먹고 싶으세요? 허허, 나는 꼭 이렇다니까 오탁번 (1943~,충북 제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