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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

한 평생 한 평생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래도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 평생이다. 시 - 반칠환 더보기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 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더보기
치자꽃 치자꽃 - 이해인 눈에 익은 어머니의 옥양목 겹저고리 젊어서 혼자된 어머니의 멍울진 한을 하얗게 풀어서 향기로 날리는가 "얘야, 너의 삶도 이처럼 향기로우렴 어느 날 어머니가 편지 속에 넣어 보낸 젖빛 꽃잎 위에 추억의 유년이 흰 나비로 접히네 ※ 아파트 뒤 화단에 가득 심은 치자가 꽃이 피면 그 향기가 바람 부는 날엔 우리 집 뒷베란다까지 날아온다. 6월이 되면서 바람에 실려오는 치자꽃 향기에 아, 치자 꽃이 피었구나.... 하고, 창으로 내려다보니 하얗게 피었다. 사진에 담아 블로그 친구님들 보여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바쁘게 며칠을 보내고...... 오늘 담으려 가니 벌써 지고 있다. 2020년 6월 17일 더보기
동치미 사진 - 인터넷에서 동치미 감곡에 사는 여자들이 꽃 피는 원서헌에 놀러왔다 국수 말아 점심 먹고 술기운이 노을빛으로 물들 때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내 옆에 선 여자가 살갑게 말했다 - 이래도 되죠? 내 팔짱을 꼭 꼈다 - 더 꼭! 사진 찍는 여자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럴 때면 나는 마냥 달콤한 생각에 폭 빠진다 - 나랑 사랑이 하고 싶은 걸까 헤어질 때 또 팔짱을 꼭 꼈다 나는 살짝 속삭였다 - 나랑 同寢(동침)이 하고 싶지? 속삭이는 내 말을 듣고 그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동치미 먹고 싶으세요? 허허, 나는 꼭 이렇다니까 오탁번 (1943~,충북 제천) 더보기
6월 6월 /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으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소리 신록에 젖어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 지금은 이 하늘에 6월에 가져온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더보기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며 건너간다 우주의 넓이가 문득,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날도 환한 봄날 자벌레 한 마리가 호연정(浩然亭) 대청마루를 자질하다 돌아온다 그런데, 왜 돌아오나 아마 다시 재나 보다 ​ - ‘이종문’ 시인의 시- 더보기
먹은 죄 사진 - 큰골가든 먹은 죄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더보기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해넘어가기전 한참은 / 김소월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하염 없기도 그지 없다, 연주홍물 엎지른 하늘위에 바람의 힌 비둘기 나돌으며 나무가지는 운다.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조미조미 하기도 끝없다, 저의 맘을 제가 스스로 느꾸는 이는 福있나니 아서라, 피곤한 길손은 자리 잡고 쉴지어다. 가마귀 좇닌다 鐘소리 비낀다. 송아지가 "음마"하고 부른다 개는 하늘을 쳐다보며 짖는다.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처량하기도 짝 없다 마을앞 개천가의 體肢큰 느티나무 아래를 그늘진데라 찾아 나가서 숨어 울다 올꺼나.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귀엽기도 더하다. 그렇거든 자네도 이리 좀 오시게 검은 가사로 몸을 싸고 念佛이나 외우지 않으랴.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유난히 多精도 할세라 고요히 서서 물모루 모루모루 치마폭 번쩍 펼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