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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

가을 타고 싶어라 벤치에 낙엽 두 장 열이레 달처럼 삐뚜름 멀찍이 앉아 젖었다 말라 가는 마지막 향기를 나누고 있다 가을 타는 남자와 그렇게 앉아 달빛에 젖은 옷이 별빛에 마를 때까지 사랑이나 행복과는 가당찮고 아득한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 환경재앙이나 핼리혜성을 까닭 모를 기쁨으로 진지하게 들으며 대책 없이 만족하며 그것이 고백이라고 믿어 의심 없이 그렇게 오묘하게 그렇게 감미롭게... 유안진 - 가을 타고 싶어라 들국화 - 가곡 바이올린 더보기
문정희 좋은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었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 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 더보기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시 - 나희덕 어릴 적 고향집에 피었던 분꽃과 봉숭아가 아파트 화단에 피었다. 분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꽃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새까만 꽃씨를 받던 어린 동생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 오른다. 더보기
8월입니다. 8월의 시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숲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시 - 오세영 8월입니다 장마와 코로나로 힘든 7월 견디시느라 수고 많으셨지요? 8월은 입추와 말복이 들어있고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들었습니다. 8월 중순까지는 막바지 더위가 될 것이니 건강 관리 잘하셔서 8월 한 달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관련 속담 모기도 처서가 지나면 입이 삐뚤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 더보기
6월에는 6월에는 / 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더보기
푸른 5월 푸른 5월 / 노천명 ​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위에 그린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女神) 앞에 내가 왠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鄕愁)를 어찌할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香水)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친다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 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 더보기
5월의 시 5월의 시 / 이해인 ​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올리게 하십시오 ​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둔 기도가 한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 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더보기
수선화에게 해마다 수선화가 곱게 피는 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를 흥얼거리게 된다. 카페에서 본 글인데 마음에 와 닿아서 일부만 옮겼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