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시 - 나희덕
어릴 적
고향집에 피었던 분꽃과 봉숭아가
아파트 화단에 피었다.
분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꽃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새까만 꽃씨를 받던
어린 동생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