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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좋은 詩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시 - 나희덕

 

 

 

어릴 적

고향집에 피었던 분꽃과 봉숭아가

아파트 화단에 피었다.

 

분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꽃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새까만 꽃씨를 받던

어린 동생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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