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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좋은 詩

해 넘어가기 전 한참은

 

                                                                                                                                  

해넘어가기전 한참은 / 김소월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하염 없기도 그지 없다,

연주홍물 엎지른 하늘위에

바람의 힌 비둘기 나돌으며 나무가지는 운다.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조미조미 하기도 끝없다,

저의 맘을 제가 스스로 느꾸는 이는 福있나니

아서라, 피곤한 길손은 자리 잡고 쉴지어다.

 

가마귀 좇닌다

鐘소리 비낀다.

송아지가 "음마"하고 부른다

개는 하늘을 쳐다보며 짖는다.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처량하기도 짝 없다

마을앞 개천가의 體肢큰 느티나무 아래를

그늘진데라 찾아 나가서 숨어 울다 올꺼나.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귀엽기도 더하다.

그렇거든 자네도 이리 좀 오시게

검은 가사로 몸을 싸고 念佛이나 외우지 않으랴.

 

해 넘어 가기전 한참은

유난히 多精도 할세라

고요히 서서 물모루 모루모루

치마폭 번쩍 펼쳐들고 반겨 오는 저달을 보시오.

 

 

* 조미조미 : 조마조마하다.

* 느꾸는 : 느꾸다. "눅다"의 사역형인 "눅이다"의 방언. 마음을 풀리게 하고 성질을 너그럽게 하다.

* 좇닌다 : 쫓니다. 서로 쫓거니 따르거니 하며 노닐다.

* 體肢 체지 : 나무의 그루터기.

* 물모루: 강물이 흘러가다가 모가 져서 굽이도는 곳.

 

원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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