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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

아름다운 곳 - 문정희 아름다운 곳 문정희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행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 번 다녀오고싶다. 더보기
2월 2월 - 정연복 ​ 일 년 열두 달 중에 제일 키가 작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는다 ​ 추운 겨울과 따뜻한 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 해마다 묵묵히 해낸다 ​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 ​슬픔과 고통을 너머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가만가만 깨우쳐 준다 ​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나를 딛고 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고 ​ 자신의 등 아낌없이 내주고 땅에 바짝 엎드린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무지무지 크고 착한 달, 더보기
봉선화 봉선화 김상욱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면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 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누나 어릴 때 자란 시골집에는 어머니가 화단을 크게 만들어 키 작은 채송화부터 키가 큰 다알리아까지 없는 꽃 없이 다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면 화단이 화려했다. 특히 봉선화는 채송화 다음줄에 심어 여러 가지 색의 꽃을 보는데 한여름 햇볕이 뜨거울 땐 봉선화 꽃과 잎을 따서 장독 위에 올려놓고 저녁때쯤 꽃과 잎이 시들해지면 백반과 소금을 조금 넣어 찧어서 넓은 아주.. 더보기
連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連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 정 주 -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 시는 언뜻 읽으면 모호하다. 천천히 정독을 하면 이별에 대하여 한결 성숙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하지는 말라고 달래는 어조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빌려 생각하면 어느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서로 철천지원수는 되지 말자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에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만나고 가는 바람’은 기약이 없어 쓸쓸하다. .. 더보기
이제는 봄이구나 평화동성당과 우리 교회는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주일 대예배를 드리고 햇볕이 좋아 교회마당에 나왔더니 성당이 바로 보이기에 폰에 담았는데.... 성당이 언덕위에 서있어 사진이 바르게 찍히지 않았다. 평화동 성당은 이해인 님이 한때 계셨던 곳이기도 하여 이해인 님의 시도 한편 올리고..... 이제는 봄이구나 - 이해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더보기
새해 아침을 노래하다 ​ 새해 아침을 노래하다 / 윤미전 보라, 새해 첫 아침을 순산하며 흐뭇한 미소로 등 두드리는 산허리 기댄 채 출렁이며 숨 고르고 있는 저 바다의 상기된 표정 새로이 열린 하늘이 햇살다발 펑펑 터뜨리며 천지사방으로 흩뿌려지고 한 살 나이 더한 새들도 무슨 생각에선지 날갯짓 하며 치솟는다 어둠 쓸어낸 새해 첫 햇살이 복덩이 같은 어린 것들 품고 있는 어미돼지 토실토실한 등가죽에 한 벌 온기를 덮어준다 숨 가쁘게 줄달음쳐 온 산맥들 일으켜 세워 삼백 예순 닷샛날 다시 행진하며 힘찬 발걸음들 모아보자 먼저 온 희망이 어서 오라 손짓하며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 더보기
겨울 풍경과 반칠환 시 새해 첫 기적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한평생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도 미뤄 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도 미뤄 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더보기
의자 / 김남조 의자 / 김남조 세상에 수많은 사람 살고 사람 하나에 한 운명 있듯이 바람도 여러 바람 그 하나마다 생애의 파란만장 운명의 진술서가 다를 테지 하여 태초에서 오늘까지 불어와 문득 내 앞에서 나래 접는 바람도 있으리라 그를 벗하여 나도 더 가지 않으련다 삶이란 길가는 일 아니던가 모든 날에 길을 걷고 한평생 걸어 예 왔으되 이제 나에게 삶이란 도착하여 의자에 앉고 싶은 것 겨우겨우 할 일 끝내고 내명 얻으려 좌선에 든 바람도사 옆에서 예순 해 걸어온 나는 예순 해 앉아 있고 싶노니 ************ 가을도 떠나고... 시집을 뒤적이다 김남조 시인의 시 의자가 공감이 가기에 올렸습니다. 11월의 끝자락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