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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

겨울 나무 겨울나무 / 서정윤 겨울엔 나무가 죽어 있다메마른 바람이삶의 번뇌로 나뭇가지에 매달리고지나간 계절의 영화로움추억으로 떨어져 썩어가는 자리에새로운 눈이 숨어있다언제나 우리는 돌아서서 헤매고늦게 만나는 쓸쓸한 날은얼마나 절망적인가다시 일어서 홀로일 수 있다면낙엽으로 버려진 추억들이바람 속에서 하나씩 꽃으로 살아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나무가 겨울엔 죽어 있다나무처럼    겨울나무로 서서 / 목필균   나 이젠 서슴없이 동안거에 들어갈까 해고단한 허울 다 벗어놓고홀가분한 가슴이 되는 거야 영하로 내려갈수록바람의 뼈대를 세우고한 계절 온전히 견딜 수 있는 것이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부산한 세상 바람단단히 걸어 잠그고침묵의 동안거로 들어서는 내겐겨울은 가장 평화로운 나라이지   겨울나무와 달.. 더보기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더보기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은기다린다는 말인 줄 알았다가장 절망적일때 떠오른 얼굴그 기다림으로 하여살아갈 용기를 얻었었다.​기다릴 수 없으면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줄 알았다아무리 멀리 떠나 있어도마음은 늘 그대곁에 있는데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았다 그대도 세월을 살아가는 한 방황자인걸내 슬픔 속에서 알았다스스로 와 부딪치는 삶의 무게에그렇게 고통스러워한 줄도 모른채나는 그대를 무지개로 그려두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떠나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나로 인해 그대 고통들이 아프다더 이상 깨어질 아무것도 없을 때나는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돌아설 수 있었다.        나의 9월은 나무들의 하늘이, 하늘로하늘로만 뻗어가고반백의 노을을 보며나의 9월은하늘 가슴 깊숙이짙은 사랑을 갈무리한다 서두르지 않는 한결같은 걸.. 더보기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 시는 언뜻 읽으면 모호하다. 천천히 정독을 하면 이별에 대하여 한결 성숙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섭섭하지만 아주 섭섭하지는 말라고 달래는 어조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빌려 생각하면 어느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 서로 철천지원수는 되지 말자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에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 더보기
치자꽃 설화 올해도 101동 앞 치자나무가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6월 들면서 치자꽃을 보겠다고 매일 가 보았지만,입을 꼭 다문채 좀처럼 필 기미가 안보이더니잊은 채 있다가 오늘 가 보니 그새 피어서노랗게 꽃잎이 변한 꽃도 있다.올해는 꽃피는 시기에 비가 오지 않아치자꽃 향긋한 향기가 멀리까지 바람에 실려와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치자꽃 설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종각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아무도 없는 법당 문 하나만 열어놓고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한참을 앉.. 더보기
아름다운 곳 - 문정희 아름다운 곳 문정희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행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 번 다녀오고싶다. 더보기
2월 2월 - 정연복 ​ 일 년 열두 달 중에 제일 키가 작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는다 ​ 추운 겨울과 따뜻한 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 해마다 묵묵히 해낸다 ​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 ​슬픔과 고통을 너머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가만가만 깨우쳐 준다 ​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나를 딛고 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고 ​ 자신의 등 아낌없이 내주고 땅에 바짝 엎드린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무지무지 크고 착한 달, 더보기
봉선화 봉선화 김상욱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면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 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누나 어릴 때 자란 시골집에는 어머니가 화단을 크게 만들어 키 작은 채송화부터 키가 큰 다알리아까지 없는 꽃 없이 다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면 화단이 화려했다. 특히 봉선화는 채송화 다음줄에 심어 여러 가지 색의 꽃을 보는데 한여름 햇볕이 뜨거울 땐 봉선화 꽃과 잎을 따서 장독 위에 올려놓고 저녁때쯤 꽃과 잎이 시들해지면 백반과 소금을 조금 넣어 찧어서 넓은 아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