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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좋은 詩

치자꽃 설화

올해도 101동 앞 치자나무가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6월 들면서 치자꽃을 보겠다고 매일 가 보았지만,

입을 꼭 다문채 좀처럼 필 기미가 안보이더니

잊은 채 있다가 오늘 가 보니 그새 피어서

노랗게 꽃잎이 변한 꽃도 있다.

올해는 꽃피는 시기에 비가 오지 않아

치자꽃 향긋한 향기가 멀리까지 바람에 실려와

지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치자꽃 설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각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 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가랑비 엷게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산비둘기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스레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시 - 박규리

 

치자꽃 설화 박규리 해석 해설

치자꽃 설화 박규리 해석 해설입니다.
 이 시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사건의 주체인 스님과 여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적 화자 '나'가 그들이다. 시적 화자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심경과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가랑비 속에 치자꽃이 피어 있고 산비둘기가 울음을 우는 6월의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는 이별의 정한을 북돋우면서 서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시는 스님이 사랑하는 여자를 돌려보낸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시적 화자가 관찰한 스님의 모습은 속세의 인연을 모두 버리고 담담한 심경으로 불도에 정진하는 불제자가 아니라, 옛사랑에 힘겨워하며 슬픔의 눈물을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다. 버림받은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산을 내려간다. 이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슴 아파하는 시적 화자는 그들보다 더 서러움을 느낀다. 사랑과 이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지켜보면서, 그런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버림받은 여자가 된 것처럼 서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산중 깊은 암자일수록 속세와의 연이 더욱 질기게 이어져 있다. 역설이다. 세간에서 받은 상처가 깊을수록 더 깊은 산중으로 찾아들지만, 암자로 이어진 아주 작은 오솔길은 제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눈물의 길'이다.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는 이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산중 암자의 한 일화를 그대로 옮겼을 것만 같은 이 시는 매우 산문적이면서도 절묘하게 시적 울림을 증폭시킨다. 시를 읽노라면 비에 젖은 치자꽃 향기가 온몸에 척척 달라붙는 느낌이다. 종교적 엄숙주의 혹은 그 가식에 질릴 대로 질린 이들이라면 이 시에 감동받지 않을 이몇이겠는가.
시 속에 등장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도 비로소 스님답고, 실연에 겨워 '돌계단 및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는 여인도 비로소 사랑을 아는 여인다우며, '괜스레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화자인 시인도 절집에 살 만한 보살답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시는 '설화'가 아니라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한 편의 영화다. 아니, 허구의 영화가 아니라 감동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그렇다.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니 이 시를 되새기며 우리 함부로 사랑의 이름으로 사기 치지 말자. (시인.  이원규)
 
 ■ 시인 박규리 
박규리는 공양주(供養主, 절에서 밥 짓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 시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도승도 아니고, 속세에서 선(禪)의 세계를 동경하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세속적 욕망을 미처 털어내지 못한 자의 갈등하는 내면을 드러낸다. 가령 이 시에서, 속세에서 찾아온 정인(情人)을 달래 보낸 뒤 몰래 눈물짓는 스님을 엿보며 같이 서러워하는 장면은 욕망의 뿌리를 끊어내지 못한 수행자의 모습을 애잔하게 전달한다. 
                                                          (해석 해설 글 - 네이버 문학정보에서 옮겨 옴)

 

 

 

올해도 치자꽃을 올리며

박규리 님의 설화가 생각이 나서 

해설과 함께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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