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사는 수국 '산수국'은요. 우리나라와 일본 원산의 키 작은 떨기나무로, 여름의 시작과 함께 가지 끝에 산방 꽃차례로 피는 접시 형태의 꽃은 나름 철저한 분업 시스템을 구축하여, 열매 맺는 자잘한 진짜 꽃(암술 수술 가진 유성화)들
바깥쪽에 화사한 가짜꽃(암술 수술 없이 꽃받침 잎만 3~5장 가진 무성화)들을 배치하고 있는데요.
쉽게 말해 장식꽃들은 열매 맺는 중책을 포기한 채 화사한 자태로 벌. 나비 불러 모으는 역할에 충실하다가요.
진짜 꽃들이 열매를 맺고 난 이후에는 빛깔을 초록으로 바꿈과 동시에 머리를 숙이고서 광합성을 시작,
열매 키우는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인데요.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는 산수국의 장식 꽃을 보고 있노라면 짠한 감정까지도 느껴진답니다.
글 - 논어와 나무 이야기에서
산수국 / 허형만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 허형만, 『가벼운 빗방울』(작가세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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