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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사는 이야기

보름 다음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아파트 뒷동에 사는 친구가

"올 보름엔 보름음식을 하기 싫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딸이 와서 급하게 찰밥을 조금 했으니 중간에서 만나자"고 했다.

 

해마다 정월 보름에는 친구가 찰밥을 많이 해서 며칠 먹을 만큼 줬는데,

지난가을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것 같아 

올 보름에는 아예 찰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어제 식당에서 주는 오곡밥으로 보름을 때웠다.

 

친구는 3남매를 잘 키워 결혼시키고 남편과 둘이 비둘기처럼 사이좋게 살았는데

지난가을 남편이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가망 없으니 준비하시는 게 좋겠다"라고 했단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을 하더니 얼마 못 가서 소천하셨다.

그 친구는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내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적이 없다.

그런 친구를 볼 때면 애처럽고 불쌍한 마음이 든다.

 

친구와 중간에서 만나 건네주는 찰밥을 받고,

길가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집에 오는데

둥근달이 초등학교 지붕 위에서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2022년 2월 16일

 

 

중간- 친구집과 우리집 사이 가운데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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