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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오솔길/좋은 詩

9월의 시






9월과 뜰

8월이 담장 너머로 다 둘러메고
가지 못한 늦여름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뜰 한켠


까자귀나무 검은 그림자가
퍽 엎질러져 있다


그곳에
지나가던 새 한 마리
자기 그림자를 묻어버리고
쉬고 있다


오규원 / 시인

 


★구월이 오면 - 이성진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알록달록 사랑스런 코스모스가

바람에 나풀거려 길가에 수를 놓았습니다
  

멀리서 기차가 칙칙폭폭

펼쳐놓은 논과 밭 사이를 가로질러

어딘가로 힘차게 지나가면

고요히 흐르는 저녁강가에서

빠알간 금물결이 춤을 춥니다

 
구월이 오면

나뭇잎이 물들어 세상을 야릇한 운치에 빠지게 하고

은은하고 고운 색으로 풍성한 저녁을 만들어

어느새 내 마음에도 애잔한 사랑이 꽃처럼 망울져 

행복한 사랑을 마음에 그립니다






9월 / 이외수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가을역 투명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 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 두겠네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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