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유안진
무어라고
미처
이름
붙이기도 전에
종교의
계절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사랑은
차라리
달디단
살과 즙의
가을
열매가 아니라
한
마디에 자지러지고 마는
단풍잎이었습니다
두
눈에는 강물이 길을 열고
영혼의
심지에도
촉수가
높아졌습니다
종교의
계절은 깊어만 갑니다
그대
나에게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11월 /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 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11월/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