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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묵상의 공간

성탄절(크리스마스) 나눔

성탄절(크리스마스) 나눔

 

 

(기독교대백과사전과 몇가지 자료를 기본으로 기록하였습니다)

 

* 들어가기 전에

@ 서로 자기소개를 해보세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인것 기억하시죠?

@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눠보십시요.

@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란 어떤 날입니까? 각자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 해봅시다.

 

. 크리스마스(Christmas)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심을 기념하는 날. 성탄절 또는 강탄(降誕)절 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 그리스도의 예배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 독일에서는 바이나호텐(Weihnachten)이라고 합니다.

X-mas라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그리스어(헬라어) Χριστς(크리스토스)의 첫글자 X()에서 mas를 붙여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X-mas를 크리스마스라고 읽는 것입니다. 1225일을 크리스마스 데이’, 그 전날 밤을 크리스마스 이브또 곳에 따라서는 크리스마스로부터 동방박사가 어린 예수를 참배하려고 왔던 일을 기념하는 공현축일(16) 전날까지를 성탄절(Christmastide)’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043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동지절’, 강탄을 의미하는 ‘Nativity'라는 말이 사용되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정해진 것은 194964일 대통령령 제 124호에 의해서 였습니다.

 

. 크리스마스의 유래

신약성경에서는 마리아의 처녀 잉태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1:18-25 ; 1:26-38).

러나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11, 16, 321(춘분절), 328, 418, 419, 520, 1225일 등에 예수 탄생을 축하했지만 교회적으로는 아무런 행사도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1225일로 고정되고 본격적인 축일로 된 것은 4세기 중반때(교황 율리우스 1: 337-352 재위)의 일이며, 4세기말에 이르러서는 기독교나라 전체가 이 날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추정상의 기념일 일뿐이지 탄생 월과 탄생일을 그렇게 결정할 만한 충분한 자료는 없습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날을 더 중요시하여 예수님의 육적 탄생의 날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날과 육체적 탄생의 날을 동일시 하였(16)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신학사상이 발전하면서 예수님의 육체적 탄생의 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성탄절을 특별한 절기로 지키는 관례가 4세기 중엽부터 급속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225일을 성탄절로 확정되는 데는 많은 이방의 풍습이 작용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4세기 당시 기독교의 세력은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민족중 로마인과 게르만인들의 사이에서는 동지절에 큰 축제를 벌이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의 동짓날이 1225일 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도 이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을 이 세상의 빛, 즉 태양이라고 표현하는(4:2)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풍습가운데 그들의 신의 위치에 살아 계신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자연스러운 날로 이날이 성탄절로 채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적으로 결코 잘못 되었거나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궂이 예수님의 탄생날짜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태어난 날짜에 관심을 가지시기보다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데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성탄절을 지키라는 말도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활절기념일과 더불어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공통적인 신앙의 표현이었고 주님의 섭리 가운데 인정된 온교회가 지켜 기념하게 된 기념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크리스마스의 발전

 

[중세: 590-1517]

크리스마스의 발전은 서서히 그리고 아주 느슨하게 발전해왔습니다. 기독교가 서양에서 먼저 전파되기 시작하였기에 여기서는 영국을 예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6세기 이전에 이미 크리스마스는 부활절과 함께 로마교회의 양대 축일로 기념되었습니다. 597년 영국에 본격적인 선교사로 선교를 시작한 캔터베리의 어거스틴은 이듬해 크리스마스때 1만명의 앵글로색슨족인 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후 영국 전체가 개종하게 되는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종한 영국인들 사이에는 오랜 전통을 가진 자기네들의 민족종교인 어머니신의 축일인 어머니의 밤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를 장식하고, 통나무를 불태우면서 가면극이나 주술의 노래를 읊기도 하며 춤을 추었는데 여기서 미신적인 요소는 제하여 지고 많은 풍습들이 크리스마스의 풍습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알프레드 대왕 때는 크리스마스로부터 16(공현축일)까지를 거룩한 기간이라 하여 노동을 금했는데, 878년 적국(데인인)에게 한때 전쟁에서 패퇴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종교개혁(1517) 이후]

헨리 8,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도 크리스마스는 영국 성공회의 3대축일의 하나로 축하되었습니다. 당시의 문학작품 등에 의하면 크리스마스는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때, 진정으로 기뻐하는 때, 친지친척과 정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이 즐거이 돌아보는 때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져서 과거의 인간관계가 파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술가들은 그들의 글을 통해서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가난한 이웃을 환대하는 때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 제임스 1세 등도 고향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자신의 신하, 하인들을 고향에 보내었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귀족들과 지배층들에게 이 일을 의무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청교도혁명(1600년 전후) 시대]

이 시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의 크리스마스의 모습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교회와 왕당파는 즐거운 전통적 관습을 상징하는 날로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했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청교도들은 이날을 로마 카톨릭의 축일이라고 하여 폭음폭식댄스도박소란 그 밖의 모든 악과 연결된 축제일이라고 비난, 공격했습니다. 이미 제악의 해부’(1583)의 저자 P. 스터브는 극장연극을 비방하고, 가면극을 한답시고 도둑질매음살인 등이 크리스마스만큼 횡행하는 시기는 없다고 쓰고 있습니다. 17세기 어느 청교도는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바커스신의 축제일이다. 이교도는 이것을 보고 예수는 먹기를 탐하는 향락주의자, 대주가(大酒家), 악마(죄인)의 친구라고 여길 것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으로 흐르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으로 인해 영국 장로교파는 1583년 스코틀랜드에서 크리스마스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 후 왕명에 의해 한때 부활했다가 다시 금지 되었습니다. 1647년 의회파는 크리스마스 금지법안을 가결하려고 했는데, 그때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폭동화하여 각지로 번졌으며, 마침내 가정 내에서의 크리스마스만 인정되었습니다.

 

[왕정복고(1660) 이후]

크리스마스는 다시 교회의 3대축일의 하나가 되어 사람들은 이를 자유로이 축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상의 변화는 일찍이 시골 지주의 집에서 펼쳐진 전통적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바꾸었으며, 소박한 시민들의 축제도 사라지고 종교심도 희박해져 갔습니다. 이 변화는 느리고 불균등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휴일로 하고, 관공서는 이 기간중 몇일을, 일이 바쁜 부서는 그 일부를 휴일로 하였습니다. 19세기가 되자 산업혁명의 여파로 노동조건이 매우 악화하여 1225일 하루만 쉬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부유한 가정에서는 호사스럽게 축하했지만, 그날을 축하할 비용마저 없는 사람들이 증대하여 가자 이윽고 크리스마스가 아예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19세기 중엽에 크리스마스가 부활되었습니다. 때는 처치스트 운동시대 였습니다. 대영 제국의 위광이 가장 확대된 시기였습니다. 새 크리스마스에서는 이웃 사랑과 자선이 중시되고 신앙심의 부활을 통한 기독교의 부흥과 새로운 종교적 탄생을 꾀하는 한편, 옛날의 떠들썩한 축제관습도 행해졌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본위의 축제로 된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었습니다.

 이때에 크리스마스캐럴이 부활하고, 선물이나 디너(정찬)가 서민의 가정에서도 성행했습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형태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새로운 크리스마스 성립에 크게 기여한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남편)인 앨버트공과 찰스 디킨스입니다.

앨버트공은 독일로부터 크리스마스트리의 습관을 크리스마스에 도입하였고, 디킨스는 크리스마스캐럴 을 비롯하여 몇 편의 문학작품을 발표, 크리스마스의 즐거움, 명랑함을 전하는 동시에, 크리스마스 본연의 모습과 물질적 즐거움을 향수하기 위해 하여야만 될 자선 등의 의무를 가르쳤습니다.

이 새로운 모습의 크리스마스는 전 영국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어, 공론가(空論家)나 반대자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기독교를 국교로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누구러져 온 영국 국민이 새로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이러한 추세에 부응, 단축되었던 크리스마스 휴일도 복싱데이(Boxing Day; 크리스마스 다음날로, 공용인이나 우편 집배원 등에게 축하의 선물을 준다)까지 연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은행, 관공서는 물론, 19세기말에는 일반 상공업 종사자에게까지도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온 국민이 다 함께 축하하는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성립되게 된 것입니다.

 

. 크리스마스의 풍습

 

1.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축제 행사의 일부로 등과 장식품을 이용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상록수인데 대개 발삼 전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교도였던 유럽인들은 흔히 나무를 숭배하였는데, 나무숭배는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도 스칸디아비아인들의 관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스칸디아비아에서는 악마에게 겁을 주어 쫒아내기 위해 새해가 되면 상록수로 집과 헛간을 꾸미고, 크리스마스 때는 새들을 위해 나무를 세웠습니다. 이 밖에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집 출구나 집안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았습니다.

독일에서도 이 관습을 지킵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 서부에서 발생하였고 아담과 이브에 대한 중세 대중연극의 주요소도구는 에덴 동산을 상징하는, 사과가 매달린 전나무였습니다. 독일인들은 아담과 이브의 축일인 1224일이 되면 집에 파라다이스(낙원) 트리를 세우고, 얇고 둥글납작한 빵(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의 표시인 영성체용 빵을 상징)을 매달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철에는 나무가 있는 방에 크리스마스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나무를 3각형으로 쌓아 올리고 선반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인물들의 입상을 올려놓으며, 상록수, 양초, 별로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16세기경 크리스마스 피라미드와 파라다이스(낙원)나무가 합쳐져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이 관습은 18세기에 독일 루터교도들 사이에 널리 퍼졌지만 크리스마스 트리가 독일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19세기초 영국에 들어온 크리스마스 트리는 19세기 중엽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이자 독일 귀족이었던 앨버트 대공의 노력으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사람들은 양초, 사탕, 예쁜 케이크를 리본과 종이 테이프로 나뭇가지에 매달아 나무를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북아메리카에는 이미 17세기에 독일 이민족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전했고 19세기 네덜란드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는 19,20세기에 미국 선교사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전했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복잡한 종이 도안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전래된 것은 6.25 전쟁 후 미군들이 진주하면서 들어오기 시작하여 60년대 이후부터 크리스마스 풍습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주로 삼각형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이 삼각형의 나무 형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합니다.

트리가 크리스마스의 풍습으로 자리 잡게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종교개혁가인 루터는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밖을 산책하다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 잠겨있는 전나무 숲은 눈에 덮여있었는데 달빛을 받고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갑고 무거운 눈에 눌려있는 전나무, 어둠 속에 외로히 서 있는 전나무, 그러나 그것들이 달빛을 받을 때 광채와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전나무처럼 예수의 빛을 받을 때 비로소 모든 문제의 해결이 온다는 감격을 다시 체험하고 이 진리를 실물교재로 가족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전나무 하나를 베어 방에 들여놓고 그 가지에 촛불을 달고 예수의 탄생일을 맞은 것이 크리스마스의 풍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며 친구, 친척에게 그 기쁨을 전하는 편지입니다. 주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아름다운 그림을 표지로 하고, 그 속에 축하하는 말을 적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동시에 새해를 축하하는 말을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대강절(크리스마스 전 넷째 주일부터 시작된다)에 보내는 것인데, 난로 위 선반에 나란히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풍물의 하나입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 보내는 것은 영어권의 모든 나라들이 지켜온 이 관습은 다른 많은 나라로 전파되었습니다.

중세에도 동판화가들이 종교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판화들을 만들었으나 오늘날 통용되는 용어로서 최초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1843년 영국에서 등장했는데, 런던에서 같은 카드, 1,000장이 인쇄되어 판매를 위해 진열 되었습니다. 이 카드 도안은 가족 파티에 관한 것으로서, 그림 아래쪽에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to You)”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습니다. 콜의 아이디어가 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1862년경이었습니다. 당시 런던에서 열렸던 제 2회 만국박람회에서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크리스마스 카드는 온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배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크리스마스 때의 촛불

어느 종교에서나 촛불은 그 종교의 예배와 의식에 많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특히 성탄절과 부활절에 많이 사용합니다. 기독교에서 촛불을 사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초 자루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심지는 그의 영이요, 불꽃은 그의 신성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때에 촛불을 켜서 유리창 곁에 놓아 아기 예수를 영접하고, 또 길가는 나그네에게 길을 밝혀주며 쉬어 갈 곳을 빌려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지나가는 길손과 같이 찾아와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시고 주인이 과연 친절히 대접하는가 아니하는가를 시험해 보시는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사람들 성탄일 촛불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는 줄 믿었고, 덴마크에서는 두 개의 촛불을 켜놓고 밤새 자지 않고 지켜보았습니다. 불가리아 농부들은 초에 불을 켜들고 외양간에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촛불예배가 널리 행해지고, 특히 촛불 찬양대는 더욱 유행되고 있습니다.

 

4. 크리스마스 실

결핵환자를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만든 장식 우표,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실을 처음으로 고안하여 발행한 사람은 미감리회 의료선교사 홀이었습니다. 그는 19281027일 황해도 해주에 결핵요양원을 설립, 한국 최초의 현대식 전문 결핵병원을 운영하였습니다. 1931년 그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 1907년 미국에서 결핵 크리스마스 실을 창안한 바 있는 미국 결핵협회의 바셀을 만나 그 방법을 배웠습니다. 1932년 한국에 오자마자 당시 일제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실 발행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1933년 홀 의사가 한복 입은 자매와 소나무로 도안한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였습니다. 이후 해마다 실을 발행하여 그 수익금이 결핵환자 수용병원에 배정되었습니다.

 

5.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 때 즐겨 부르는 노래로 알려진 캐럴은 맨 처음 영국에서 시작하고 발단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희랍어 코라올레인, 즉 코로스()란 말과 아올레인(풀루트)란 말의 합성어로서 원 뜻은 풀루트를 불면서 춤을 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국에서 14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캐롤은 춤을 위해 만들어진 후렴 또는 반복이 그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15세기에 들어서 캐롤은 그 가사와 곡이 약간의 소양을 지닌 음악가들의 손이 아닌 학식 있는 성직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예술적인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영어 캐롤의 황금기는 15세기로, 이 시기는 휴머니즘 시대이며 발라드가 출현하는 시기입니다. 취급된 주제들은 예수탄생 이외에도 많았습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자칭 작곡가라는 많은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소위 캐롤의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이 곡들은 예수와 전혀 상관없이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창작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현대 작곡가들은 그들이 진정한 캐롤 속에 단순성, 힘 및 정직한 요소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상품화로 1세기전 캐롤이 병들었던 시대에 만들어졌던 것같은 병적이고, 감상적이며, 적당치 못한 형태의 사이비 캐롤곡들의 양산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6. 크리스마스의 별

별의 모양은 무엇보다도 성탄 트리, 카드, 케익, 쿠키 등 별의 모양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2:2,7). 동방박사는 이 별을 보고 경배하러 베들레헴까지 왔던 것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등은 하늘에 별이 나타난 후에야 크리스마스 예배를 보기 시작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유럽 어떤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때에 처녀들이 들로 나가서 다음 해에는 시집가게 해 달라고 별을 보고 기도 드리는 일도 있습니다. 트롤의 소년들은 동방박사와 목자와 헤롯과 시종들의 옷차림을 하고 별 모양으로 만든 등불을 든 사람의 뒤를 따라서 시가로 행진합니다. 스웨덴 어린이들은 별을 장식한 키 높은 모자를 쓰고 별의 다섯모에 종을 달아 큰 별을 든 소년의 뒤를 따라 거리를 행진합니다. 미국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나 크리스마스의 특별 등불을 가설합니다.

 

7.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는 어린아이들이 수호성인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는 전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산타클로스란 말은 270년 소아시아 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에서 출생한 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자선심이 지극히 많았던 사람으로 후에 미라의 대주교가 되었고 카톨릭 교회에서는 현재까지도 성인으로 숭배되고 있습니다. 라틴어로는 상투스 니콜라우스’, 네덜란드 사람들은 산 니콜라우스그리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산테클라스라고 각각 부르는데 이것이 영어화되어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우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습니다. 니콜라우스는 터키의 주교였는데 당시 지참금이 없어 시집을 못가는 세 자매를 도와주기 위해 빨래줄에 걸려 있는 양말 속에 금덩어리를 가득 담아 주었습니다. 후에 이 이야기가 온 동네에 퍼지게 되었고 후에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를 세인트 니콜라우스(Saint Nicolaus), 즉 성니콜라우스라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 오늘 나눔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무엇이 있습니까?

 

.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준수방법

 

1. 크리스마스의 참의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1:14;3:16;4;4). 또 다른 성경에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죄로 물든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복음 중에서 매우 중대한 원리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사건의 전례가 없습니다. 1:23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며 또 창조주와 심판주로서 우리와 밀접하게 관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임마누엘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인간 통제적 차원이 아니라 바로 죄된 우리와 교제하고 내 안에 거하며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과의 동고동락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화로운 세계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4:5에는 우리 죄를 속량하셨다고 했으며 마1:21에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막힌 담을 제거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께서 태어나신 성탄절은 마땅히 경축되어질 날인 것입니다.

 

2. 어떻게 성탄절(크리스마스)을 보내야 할까?

우리는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주님의 탄생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지 못하고 단순한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지내 버린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탄생의 참의미를 되새기고 감격하며 감사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어떠한 자세로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지 몇가지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성탄은 온 인류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하나님의 비하(卑下) 사건입니다. 죄인을 구하시려고 하늘의 영광을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의 형상을 입으신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이 성탄절에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경건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탄생일에 저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이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으며(2:2), 그 아기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2: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므로 그분께 엎드려 경배 드리는 것은 매우 맞는 일이었습니다. 성탄절에 흥청거리며 인간적 기쁨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주님께서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날 함께 즐기느라고 새벽예배나 성탄절 공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셋째, 아기 예수를 찾은 동방의 박사들은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2:11). 그들은 별을 보고 왕이 나신 줄 알고서 가장 귀한 예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도 성탄절에 주님을 만나러 가면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예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부득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드려지는 예물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아들을 선물로 주신 사건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온 인류에게 사함을 주신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대접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성탄절을 맞이할 때 주님의 뜻을 따라 희생하고 봉사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 곧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나눔의 성탄절로 삼아야 할 것이고 이때만이 아니라 이날을 기점으로 지금까지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을 쫒아가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주님 나신 날에 천군과 천사가 나타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말했습니다(2:10). 천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송탄절에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죄인이 의인되고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며 마귀에 갇힌 자가 풀려나 자유를 얻는 이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이 땅 위에 없을 것입니다. 진정 인류 최고 최대의 기쁨이 바로 이 성탄인 것입니다. 더불어 이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참된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성탄을 천사가 증거했고(2:10), 하늘의 별이 전했습니다(2:2). 하물며 만민에게 미칠 크고 좋은 소식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소식이며 기뻐 뛰며 노래할 구원의 소식이므로 우리는 큰 소리로 열심히 세상을 향해 이 성탄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하고 참된 성탄의 축하가 될 것입니다.

 

3.초대교회의 크리스마스

다음 글은 189712월 발행의 그리스도 신문에 게제 되었던 것인데, 우리 나라 초대 교회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켯는가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새문안 교회 예배당에서 온갖 색동을 들고 밤에 불을 밝게 한 뜻은 양력 25일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강하신 날인 고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 영혼을 위하여 믿는 마음으로 예배당을 짓고 상주(하나님)를 공경하는데 일년에 일차씩 오는 탄신을 극진히 공경함은 구세주가 이 세상에 강생하여 만민을 위하여 죽으사 믿는 사람의 죄를 속하여 주신고로 그 날을 더욱이 소중히 여기는 뜻으로 탄일 저 날 밤에 불을 밝히고 교우들이 모이여 상주(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뜻인즉 이 세상에 보내사 우리를 구하여 주셨으니 감사함이요 또한 정동목사 언더우드의 집에서 세례 문답을 하여 양력 1226일 주일에 새문안 예배당에서 원 목사가 세례를 주는데 세례 받은 교우가 43인이요, 원입교인으로 세운 교우가 28명이요, 아직 기다리는 사람이 10여인이더라가 그것입니다.

위의 글을 통하여 그 때 초대 교우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어떻게 지냈으며 구주 성탄절을 기하여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 수 있으니, 첫째 감사, 다음 찬송, 그리고 기도 등이 주요 행사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택부/우리나라 초대 교회이 크리스마스>

 

@ 앞으로 당신은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기를 원하십니까? 생각을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 할 수 있는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