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백 / 문태준
신라의 여승 설요는
꽃 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 환속했다는데
나도 봄날에는
작은 절 풍경에 갇혀 우는 눈먼 물고기이고 싶더라
쩌렁쩌렁 해빙하는 저수지처럼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어도
봄밤에는 숨죽이듯 갇혀 울고 싶더라
먼발치서 한 사람을 공양하는
무정한 불목 하나로 살아도
봄날에는 사랑이 살짝 들키기도 해서
절마당에 핀 동백처럼 붉은 뺨이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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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봄날 승합차를 대절해서 친구들과 지리산 화엄사에 갔다,
아침에 날씨가 화창하여 기분 좋게 출발했는데
지리산에 도착하니 비가 뿌리고 있다.
우리는 우산도 없이 머리만 안 젖으면 된다는 식으로
모자를 꾹 눌러쓰고 뛰어서 기념품 파는 곳에 갔다.
관광지에서 산 기념품이 집에 오면 잘 쓰이는 일은 그의 없는데
그럼에도 들뜬 기분에 모두들 한 두 가지씩 사고
나도 삼채소금이라고 쓰인 소금 종류를 한 병 샀다.
지금도 뚜껑을 열지도 않은 채 냉장고 구석에 있다.
화엄사 들어가는 숲길에 차창문을 열면
"달다" "상큼하다"라는 표현이 모자라는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가슴이 탁 트이고 머리가 맑아진다.
매번 올 때마다 느끼는 이 신선함이 너무 좋아 여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에 들어가니 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붉은 동백이다.
지난밤 비가 왔는지 함초롬히 물기를 머금고 다소곳하게 피어있고
동백나무 아래는 떨어진 꽃송이가 늘려있다.
동백은 질 때가 되면 시들지 않고 꽃송이채 툭!! 떨어진다.
마치 슬픈 여인의 눈물처럼....
나는 다른 꽃보다 깨끗하게 지는 동백이 마음에 들어
여수 동백섬 오동도에도 가 보고 선운사 동백도 보았다.
오늘 문태준 시인의 시 '붉은 동백'을 올리며 지난날들이 생각나서
당장이라도 동백꽃 피는 남쪽으로 여행을 가고싶은데
지금의 이 상황이 발목을 잡아 올해는 아쉽지만 그냥 넘어가야겠다.